‘폐지’ 청원까지 올라온 도서정가제, 문제는 어디에 있나

[공감신문 시사공감] 올해, 그러니까 2018년은 ‘책의 해’라 한다. 어느덧 상반기도 저물어가는 이때, 독자 여러분은 올해 몇 권의 책을 읽으셨는지. 

기자는 부끄럽지만 아직 2권(...) [pxhere/CC0 public domain]

문화체육관광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교과서나 만화, 잡지 등을 제외한 일반 도서를 1권이라도 읽은 성인은 59.9%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바꿔 말하자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셈이다. 어쩌면 지금 이 포스트를 읽고 있는 여러분 가운데서도 어떤 분은 이 4명에 속해 있을 수도 있겠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줄로 안다. 책을 읽을 만한 여유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분들도 계실 테고, 책 표지만 넘겨도 잠이 오는 분들도 분명히 있으실 거다. 또 어떤 이들은 책값이 만만치 않아 책 한 권 구입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책값 때문에 책을 사지 않는다고 하면 “에이, 책 읽기 싫으니까 괜히 핑계 대는 것 아니야?”라는 핀잔이 돌아왔더랬다. 서점들마다 할인행사를 주기적으로 내놓고 있으니 책값에 대한 부담은 확실히 덜했기 때문이다. 

책의 뒤표지를 보고 깜짝깜짝 놀라기도 여러 번이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마음에 드는 책 몇 권만 골라도 금세 몇 만 원을 훌쩍 넘어가니(...) 기자 개인적으로도 부담스럽다는 느낌을 종종 받곤 한다. 그리고 몇 년 사이 책값 부담이 늘어난 직접적인 요인에는 바로 ‘도서정가제’가 있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3년 2월이지만, 이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다. 그로부터 4년이 더 흐른 2018년 현재, 청와대 게시판에는 ‘독서를 막는 도서정가제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이 청원이 2만7000여 명의 지지를 얻고 있다. 

도서정가제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많은 이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일까.  오늘 공감신문 시사공감 포스트에서는 도서정가제를 소비자의 눈으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 도서정가제, 너는 누구냐

도서정가제가 처음 도입된 것은 2003년 2월이다.

도서정가제는 서점이 임의로 할인율을 정해 책을 판매하는 행위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제도다. 출판사가 정한 책값에서 얼마만큼을 할인할 것인지는 정부가 정하도록 한다. 

이 법이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지난 2014년이지만, 이 제도는 사실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인 2003년 2월 도입됐다. 논란이 됐다는 2014년의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도록 하자. 

도입 초기, 그러니까 2003년 당시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은 온라인 서점이었다. 출간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신간의 할인율은 10%까지로 제한하되, 그 이상 구간에 대해서는 자율적으로 할인율을 정할 수 있게 했다. 

당시에는 모든 서적에 이를 적용하도록 했는데, 2년 뒤부터는 취미·여가 활동 관련도서, 성인용 자격증 수험서, 초등학생용 참고서 등을 차례대로 제외했다. 

도서정가제 적용대상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서점으로까지 확대된 것은 2007년 10월이다. 출판및인쇄진흥법이 ‘출판문화산업진흥법’으로 바뀐 2007년 10월, 도서정가제 내용이 일부 수정된 것이다. 이때 신간의 기준도 18개월 이내의 서적으로 바뀌었다. 

도서정가제가 본격적으로 논란이 된 것은 2014년부터다.

그리고 문제의 2014년 11월. ‘제2의 단통법(단말기유통법)’으로 불리며 많은 이들의 반발을 샀던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시행된다. 당시 개정안은 출판 시기에 관계없이 모든 서적의 가격 할인율을 10% 이내로 조정했으며, 기존에 예외로 뒀던 실용서나 초등학습 자습서 등도 법의 적용을 받도록 했다. 

당시 국회는 도서정가제 개정의 취지로 가장 먼저 소규모 서점의 경쟁력 약화를 들었다. 대형서점들의 가격경쟁에 치여 문을 닫는 동네서점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나온 것은 ‘책값 거품’이다. 출판사들이 책에 가격을 매길 때부터 할인을 염두에 두고 정가를 높게 책정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당초 이 개정안은 지난해 11월을 끝으로 시행이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지난해 8월 출판·서점 업계 등 이해관계자들의 합의에 따라 2020년 11월까지 연장됐다. 

 

■ 2018년 5월, ‘완전’도서정가제 시행되다 

2014년 개정을 앞두고 각 서점이 대규모 할인행사를 벌여 서점이 북새통을 이루는 장관도 연출됐다.

한 차례 논란을 딛고 도서정가제는 개정안대로 시행됐고, 이제 어느 서점에서든 대규모 할인행사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가격 거품이 빠져 책값이 안정화 될 것이란 당초 예상과는 달리, 눈에 띄는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고 이는 오롯이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남았다. 그리고 책값 부담은 자연스럽게 중고 책 시장과 이북(e-book, 전자책) 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실제 국내 대형서점 가운데 최초로 온라인 중고책 사업을 시작한 알라딘은 2014년 도서정가제가 개정된 후 오프라인으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간 끝에 연평균 13~15% 매출 성장을 달성했다. 개인 간 중고 책 거래가 활발해진 것은 뭐 말할 것도 없을 테다. 

이북시장의 활성화에도 도서정가제가 일조했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이북 시장도 마찬가지다. 전자책 역시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받기는 하지만 정가 자체가 종이책의 20~30% 낮게 책정돼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달부터는 중고 책 구입도, 이북 대여도 만만치 않게 됐다. 출판사 단체들과 온·오프라인 서점, 전자책 유통사, 소비자 단체 등 출판·유통업계가 지난 3월 합의한 ‘건전한 출판·유통 발전을 위한 자율협약’ 세칙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이 협약에서는 전자책 대여기간을 3개월 이내로 규정했다. 기존에 전자책은 50년까지도 대여가 가능했는데, 대여라는 명목 하에 정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이 책정돼 사실상 ‘편법할인’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온 탓이다. 

누구를 위한 제도 강화인가, 라는 목소리마저 나오는 상황

이와 함께 중고도서는 신간 출시 후 6개월 후부터 판매할 수 있다고 협약은 명시했다. 기존에도 중고 서점들은 출판계 권고에 따라 출판 6개월 이내의 도서는 판매하지 않았지만, 이번 협약에서 이를 완전히 명문화한 것이다. 이는 개인 간의 거래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외에도 도서정가제 취지를 준수하기 위해 제휴카드 할인 등 ‘3자 제공’ 할인을 판매가의 15% 이내로 제한하고, 베스트셀러 집계 시 비회원의 구매이력은 제외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소비자들은 그간 눌러왔던 도서정가제에 대한 불만을 하나 둘씩 터뜨리는 모양새다. 도서정가제의 시행에서 연장, 그리고 강화까지 어느 단계에서도 정작 당사자인 소비자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이 그 이유다. 도서정가제를 폐지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 ‘폐지하자’는 목소리, 왜? 

책 고르는 건 재밌지만 가격 확인은 재미없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기자도 얼마 전 책을 구입하려 아주 오랜만에(...) 온라인 서점을 찾았다. 이전에 사야겠다고 미리 맘먹었던 책 몇 권과 카테고리별로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장바구니에 넣고 확인했더니 그 가격이(...) 

결론만 말하자면, 그날 기자가 구매한 책은 딱 세 권에 불과했다. 물론 그러고도 5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을 지불해야 했지만 말이다. 이것이 비싸다, 혹은 비싸지 않다 판단을 내리는 것은 오롯이 소비자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뭐, 뒷말은 굳이 붙이지 않기로 한다. 

우리 집이었으면...! [photo by George Redgrave on Flickr]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치고 책에 대한 소장욕구가 없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도서 애호가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으로 사방이 막힌 나만의 책방을 꿈꾸기도 한다. 기자 본인 역시도 여전히 그런 삶을 꿈꾸는 사람 중 1인이다. 

이전까지는, 그러니까 책값에 대한 부담이 지금보다 덜했던 시절에는 살까, 말까 고민되는 서적은 일단 구매부터 하고 봤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도 몇 번을 뒤적거리고 나서야 구매를 결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마저도 ‘나중에 도서관에서’라고 미루다 잊어버리는 일도 왕왕 일어나고. 

동네 책방 살리기 취지에 제대로 부응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남는다.

도서정가제의 당초 취지였던 동네 서점 살리기에도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해 5월 국세청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점 사업자의 숫자는 전년 동기대비 0.48% 줄어든 7893명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감소세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도서정가제 시행 덕에 개성 있는 책방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최근 생겨나고 있는 책방들은 대부분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데, 시중의 도서와 달리 판매가 된 후 정산을 하는 위탁판매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서정가제와 독립서점의 붐은 큰 연관이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소비자는 없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오늘 시사공감 포스트는 철저히 소비자의 눈에서 쓰여지긴 했으나, 사실 업계의 고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상승하고 인건비, 유지비도 만만찮게 들어가는 상황에서 독서량은 꾸준히 떨어지고 있으니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는 것도 당연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2014년 도서정가제 개정 이후 소비자들의 구매 부담이 무거워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신인, 무명의 작가들과 소비자들일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고 난 후 흥행이 보장된 책들만 제작된다는 고충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 법의 당초 취지와 달리 동네책방들의 어려움도 그리 나아졌다고 보긴 어렵다. 

물론 출판시장의 침체가 오롯이 도서정가제에서만 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소비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들의 영역이 점점 더 확장되고, 현대인들의 바쁜 삶과 스마트폰의 대중화 역시도 시장의 침체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독서 장려를 위해 대안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pxhere/CC0 public domain]

그래도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도서 정책의 기본 방향은 책 읽기를 권장하는 쪽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값 구매 부담이 존재하고 있는 한 독서를 어려워 하는 이들, 책 읽기를 시작하려는 이들을 끌어당기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건전한 시장 질서를 확립함과 동시에 독서 인구를 끌어올리고자 한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공론화 단계부터 시작해야 될 것이라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또 단순히 판매가격뿐만이 아닌 원가책정과 유통구조에 대한 검토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독서가 부담스럽지 않은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바다. [pxhere/CC0 public domain]

물론 이와 같은 과정에서 다소 갈등과 논란이 빚어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정말로 ‘건전한’ 시장 질서를 세우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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