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은

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공감신문 교양공감] 들려오는 노랫말이 별안간 심장에 묵직하게 꽂혀 들어올 때가 있다.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치는 날 “괜찮아져, 죽을 만큼 아파도”라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위로가 필요한 날 “그대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라는 다정한 속삭임이 들려오고. 가슴 뛰는 데이트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하는 울림이 울려 퍼지기도 한다. 노래 가사들은 품어둔 말, 마음을 우리 대신 말해주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어떤 노래의 가사는 감정을 전달해주는 것을 넘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느껴지게 한다. 여러분은 위 텍스트를 어떻게 읽으셨는지? 마치 잊어야 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전보다 한 뼘 넓어진 방 안에 홀로 누워 눈에서 이슬방울을 툭, 툭, 흘리는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하다. ‘노래하는 시인’이라 불리는 가수,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사 중 일부분이다.

노래보다 가사 속의 낱말, 문장 하나 하나에 집중해보는 시간을 함께 해보자. [Photo by Mike Giles on Unsplash]

모르고 쉽게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보게 되는 가사가 있다. 어떤 가사들은, 누군가(가수)가 한 편의 시를 읊어주는 듯 감성을 건드린다.

오늘의 교양공감 포스트는, 짧은 시 한 편처럼 느껴지는 시적인 가사들이 돋보이는 곡들을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이 시구(詩句)들은 듣는 것으로도 좋지만, 읽고 입안에 넣어 혀로 이리저리 굴려보면 더 깊은 맛을 낸다. 그러니 오늘은 보컬의 목소리보다 가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듣는 것보다 읽는 것에 좀 더 집중해보시는 게 좋겠다.

■ 매일을 그대와 함께하고 싶어라

즐거웠던 데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콩닥거리는 설렘을 조금 더 오랫동안 느끼고 싶고, 이대로 다음 만남까지 기다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귀가길은 늘 길게만 느껴진다.

매일 아침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눈을 뜬다면 얼마나 기쁠까? 매일 함께 새벽비 내리는 거리를, 저녁노을이 스며드는 하늘을 함께 나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렇게 매일을 함께 밤의 품에 안겨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들국화, 1985년 발매]

‘그대’와 함께 우리를 둘러싼 모든 걸 함께 나누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들국화의 이 곡은, 사랑스럽게 속삭이는 듯한 가사로 인해 발표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려지면서 사랑을 받고 있다.

■ 수줍은 아이처럼, 늘 도망가는 내 사랑

그렇게도 함께 있고 싶고, 그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사랑도 결국은 끝이 있더라. 행여 놓아 버릴까봐 꼭 움켜쥐어 봐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수줍은 아이처럼 달아나버리는 사랑이다. 한땐 밸런타인 초콜릿처럼 달콤하기만 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사랑이란 거. 그런데 끝을 맛보고 나니 그게 참 쓰린 거였단 걸 깨닫는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별도 참 쉽다. 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졌던 잊지 못할 사람 때문에 이 길을 걸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뜨거운 사랑도 열기가 가시면 어이없을 정도로 차갑게 식어버린다. 안타깨비처럼 붙잡으려 해봐도, 마음 떠난 이는 참새처럼 포르르 날아 도망가 버린다. 그렇게 부지런히 떠나가지 말고 잠깐만 쉬어가면 좋을텐데.

[욕망의 불꽃 OST, 2010년 발매]

몇 번이나 반복되는 연애의 끝을 경험하고 나면, 언제나 도망가듯 사라져버리는 사랑이 미워질 때가 있다. 왜 내 사랑은 늘 도망가는 걸까 원망스러운 순간들을 노래한 이 곡은 그의 숱한 명곡 중 비교적 최근(2010년)에 드라마 OST로 발표됐다.

■ 꿈을 찾아왔지만, 그 곳은 춥고도 험한 곳

패기 좋게 상경한 청춘은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면서 반짝이던 빛을 잃어가는 것만 같다고 느끼게 됐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무엇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다. 금방 찾아낼 줄만 알았건만 도무지 꿈이란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화려한 이곳은 참 춥고도 험악하다. 괴롭고 슬픈 마음을 저기 저 별이 알아줄는지, 그저 그 자리에 반짝이고만 있을 뿐이다. 고향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

[The Dreams, 1991년 발매]

나이를 먹을수록 의미를 곱씹게 되고, 꿈 하나만 쫓다 문득 외로움과 괴로움이 울컥 차올라 뜨거운 눈물을 먹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 곡에 위로를 받게 된다. 가사는 미세먼지처럼 텁텁하고 팍팍한 도시의 삶을 그려내고 있지만, 경쾌한 멜로디와 어우러지면서 알 수 없는 고양감을 선사하는 곡이다. 마치 화려한 도시에서 지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 힘을 내 보겠다는 다짐처럼 들려온다.

■ 세상에 길들어가며 체념도 늘어간다

제법 머리가 커버린 지금도 아직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명쾌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그건 아마 직장에서 마주치는 동년배의 아저씨들도, 고향에 두고 온 동네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성큼성큼 앞서가고 있고, 우리는 그 뒤를 뱁새 황새 쫓아가듯 가랑이 찢어져라 살아가고 있다.

지금보단 잠이 없었던, 알통이 굵었던 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참 아름다웠던 우리의 유년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고, 다시 시작할 용기도 나질 않는다. 이젠 누가 볼멘소릴 해도 “야, 남들도 다 그러고 살아~”라며 유난 떨지 말라고 구박을 하게 된다. 하나 둘씩 체념하는 것들이 늘어간다. 이렇게 서서히 세상에 길들어 가는 걸까?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 1993년 발매]

많은 이들은 자신의 유년시절, 성장 과정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불안불안하게 세상을 따라 참 멀리도 왔는데도 아쉬움이 남고, 아직 대답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저 지금까지처럼 바쁜 걸음으로 살아가야 할 따름이다.

■ 여보, 안녕히 잘 가세요

정정하다 못해 괄괄하신 외할머니 지갑 안에서 작은 쪽지 하나가 툭 떨어졌고, 그 안에는 외할머니의 단정한 글씨가 흐릿하게 적혀있었다. ‘나를 두고 그렇게 먼저 떠나가면 나는 어떻게 살라는 말이에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 장성해 다들 잘 살고 있으니 얼마나 고맙소.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허리 아프지 말고 잘 계세요.’ 외할머니의 편지에는 이십여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그리움도 담담하게 담겨있었다.

외할머니는 자신과 반평생을 함께해온 반려자를 떠나보내기 쉽지 않았으리라. 다시 못 올 길로 혼자 떠나려는 것을 붙잡고, 어찌 벌써 가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손을 꼭 잡아주던 할아버지의 눈가에 눈물이 흐리는 것을 보곤 이내 안녕히 잘 가시라고 작별을 하셨을 게다.

[No Artificial Added, 1996년 발매]

많은 분들이 이 곡을 故김광석의 노래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한국 최고의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이 20대 시절에 쓴 곡이다. 생전에 김광석에게 ‘빌린 돈’이 있어 자신의 곡을 부르게 했었노라는 농담 섞인 후일담도 전해지고 있다.

■ 철 지난 노랫말 속의 은유와 함축

오늘 교양공감 포스트에서 소개해드린 노랫말들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눈치 채셨겠지만 대부분이 다소 ‘철 지난’, 옛날 노래 축에 속하는 곡들이다. 이런 80~90년대 곡의 가사들은 요즘 유행하는 통통 튀고 발랄한, 호소력 있는 요즘 가사들과 비교하자면 약간 심심하고 밋밋하다고 느껴지실 수도 있겠다.

가사에 집중해 들어보면 또 다른 매력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Photo by Gabriele Diwald on Unsplash]

그러나 최근의 곡들이 감정에 대한 호소에 집중한다면, 이번 시간에 소개해드린 과거의 노래들은 가사에 조금 더 은유와 함축이 담겨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요즘 노래와는 다른 감성을 전해주기도 한다.

별 생각 없이 꽂은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낱말들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보자. 마치 수십 장의 노트를 찢어 구겨버리는 시인처럼 작사가들이 했을 무수한 고민의 결과물을 듣고, 읽고, 곱씹어보자. 아마 놀랄 만큼 참신한 표현력에 시 한 수를 읽은 듯 감정이 요동치게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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