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창우 화백 그림 안에 숨겨진 비밀

석창우 화백의 두루마리 성경 필사 / 촬영 = 윤동길 사진기자

[공감신문 라메드] 30여년 전 2만2900V의 전기에 두 팔을 잃은 석창우 화백. 그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그림에 도전했다. 입이나 발가락이 아닌, 양어깨에 의수를 달고 갈고리로 붓을 잡아 그려나가는 석창우 화백의 또 다른 세상, 그림 안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팔 대신 마음과 온몸으로 그린다

석 화백의 작업실, 한쪽 구석에 석 화백의 얼굴이 그려진 작은 그림이 있다. 그 안에 “손을 잃어 마음을 더 빨리 얻었네”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사고를 당해 두 팔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 심지어 먹기도 어렵고, 화장실 사용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그런 석 화백의 절망을 구원한 것은 아내와 가족들이었다.

걱정할 것 없다며 담담히 가장의 책임을 떠안은 아내. 천진난만한 아들은 두 팔을 잃은 아빠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 그로부터 석 화백의 삶은 바뀐다. 그림 선생님들을 찾아가 공부를 하고, 그림을 연마하면서, 석 화백은 인체가 가진 그 변화무쌍한 모습에 빠져든다.

석 화백은 의수를 걸 수 있는 두 어깨를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두 팔과 두 손을 이용한 그림은 그 가능성이 다양하다. 하지만 의수를 착용하고 갈고리를 단 석 화백에게 그런 가능성은 허용되기 어렵다. 대상에 대한 특징을 잡아 마음을 정하고, 그 마음이 의수를 통해 캔버스에 그대로 한 번에 전해진다. 손과 팔이 가진 디테일이나 기교와는 전혀 다른, 온몸을 통해 마음을 캔버스에 담는 작업.

그렇게 석창우 화백의 ‘수묵크로키’ 화법이 완성된다. 김연아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의 그림을 그리면서 석 화백은 대상이 가진 마음과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팔과 손이 있던 시절보다 더 세상과 가까이 맞닿은 마음으로 진정성 있는 표현을 할 수 있었다.

 

신의 계획, 성경 필사의 대장정

석 화백은 의수를 걸 수 있는 두 어깨를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신 신의 계획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석 화백. 그렇게 신의 축복대로 30년 동안의 시간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올 수 있었다.

그런 석 화백은 나이 60세를 전후한 시기인 2014년 소치동계장애인올림픽에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주경기장에서 그가 펼친 퍼포먼스가 세계인의 가슴에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석 화백의 마음도 같이 커졌다. 그리고 석 화백은 보다 큰 의미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장애가 아니었다면 이런 그림을 알 수도, 그릴 수도 없었다는 석 화백의 고백은 큰 울림이 있었다.

석 화백은 붓글씨로 한지에 성경 필사를 시작했다. 신구약 66권의 방대한 성경전서를 필사하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석 화백은 두루마리 형태의 한지에 붓으로 또박또박 한 자씩 써내려가는 작업을 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하나님에 대한 보답이며, 좀 더 큰 작업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구도의 수행이라고 했다. 놀라운 것은 한지 위에 쓰인 석 화백의 글씨다.

내용을 떠나서 글자 한 자 한 자가 마치 살아있는 느낌으로 쓰여 있었다. 한지 위에 입체적으로 꿈틀거리며 당장이라도 한지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기세였다. 손과 팔로 쓴 글씨가 아니라, 마음과 온몸을 집중해서 기록한 작품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20미터는 될 듯한 두루마리 한지를 석 화백이 바닥에 죽 핀다. 지금까지 작업된 두루마리들은 커다란 박스에 담겨 있는데, 박스가 10여 개는 되어 보였다. 이제 구약의 중반 이후를 쓰고 있으니, 구약을 마무리하고 신약을 담아내는 대장정의 기록이 끝나면, 그야말로 엄청난 양이 될 것이다.

석 화백이 완성할 이 작품은 두루마리 별로 대형 액자에 담길 예정이다. 그 이후에 많은 사람에게 공개되고 회람되면, 종교적 범주를 넘어 보편적인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자신이 장애가 아니었다면 이런 그림을 알 수도, 그릴 수도 없었다는 석 화백의 고백은 큰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통이 아닌, 사람과 세상, 하나님을 향한 즐겁고 기쁜 일이었다고 말하는 석 화백. 그의 얼굴에 소년과 같은 미소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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