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들의 전쟁을 막을 진짜 갑은 누구

[공감신문 시사공감]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됐다. 

아직 내년까지는 약 5개월 정도 남은 상황이지만, 2년 연속 두 자릿수로 오르는 최저임금에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연일 최저임금 인상안에 대한 비판 보도가 쏟아지는가 하면,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인 단체는 내년도 최저임금에 불복하겠다는 입장까지 내세웠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면서 근로자들의 불안도 커지는 모습이다. 

2019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8350원으로 정해졌다.

예상보다 더 큰 반발에 직면한 정부는 영세업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반도 곳곳에서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은 그저 날씨 뿐만은 아닌 듯하다. 오늘 시사공감에서는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논란에 관한 이야기를 다뤄볼까 한다. 

 

■ 갈 곳 잃은 영세업자 

내년 최저임금 인상안을 놓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달 14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말 그대로 ‘우여곡절’ 끝에 시간당 8350원으로 정해졌다.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 사용자위원 9명이 전원 불참하는 등 그간의 심의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최저임금 인상 결정이 내려진 이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만 가는 모습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인상안이 발표된 후 즉각 성명을 통해 이번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의사를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되기 이전인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모라토리엄’을 실행에 옮길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어 지난 24일에는 외식업중앙회, 경영인권바로세우기 중소기업단체연합,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소공인총연합회 등과 함께 ‘소상공인 생존권 운동연대’ 출범식을 열었다. 

이날 운동연대의 공동대표를 맡은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매년 반복되는 최저임금 문제를 바로 지금 소상공인들의 입장을 반영해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상공인 생존권 운동연대는 ‘5인 미만 사업장 소상공인업종 최저임금 차등화’라는 소상공인들의 염원을 외면하고 공익위원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2019년 최저임금안은 수용하기 어렵다. 2019년 최저임금 결정과는 관계없이 노·사 근로 자율협약을 확산시키기 위해 현장 실정에 맞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보급하겠다” 

지난 16일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업종별, 지역별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의점 업계의 항의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이하 전편협)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업종별,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2년간 29%에 달하는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은 영세사업자에게 유례없는 살인적 행위로, 편의점 업게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 결정으로 사업장이 체감하는 실질임금은 정부와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시간당 1만 원을 넘어서게 됐다. 이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인정해야 한다”

당초 편의점 업계는 최저임금 인상 후 동맹휴업이나 심야영업 중단 등의 단체행동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세웠지만, 당분간은 이를 유보하기로 했다. 정부 등의 대안과 대책이 나오면 그때 다시 단체행동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인건비 상승으로 영세업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졌다.

경영계가 이처럼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역시 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안 그래도 올해 최저임금 인상폭에 맞추느라 인건비 부담이 만만치 않은 상황인데 내년 최저임금 인상안대로라면 폐업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게 그들의 변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자영업자·소상인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74.7%의 응답자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들은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장 먼저 직원 축소(53.1%)를 제시했다. 일부는 아예 사업을 포기(11.5%)하는 방안도 고려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 을들의 전쟁이 된 최저임금 논란 

근로자들이라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의 최대 수혜자인 근로자들도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용돈벌이를 하는 학생들과 청소·경비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고령자들의 불안감은 더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 축소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인건비 부담 여파가 결국 근로자에게까지 뻗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여전히 최저임금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만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기에는 아직도 턱없이 모자란 액수라는 것이다. 

노동계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의 평균 가구생계비는 282만 원에 달한다. 비혼 단신 노동자 평균 생계비는 193만 원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시간당 8350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174만5150원이다. 최저임금만으론 비혼 단신 노동자의 평균 생계비도 메꾸지 못하는 셈이다.  

지난 17일 알바연대 회원들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 불발 규탄시위를 벌이는 모습.

가파른 인상폭에도 여전히 노동계에서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전까지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해외 주요국들에 비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를 넘어선 1999년에도 최저임금은 시간당 1525원이었고, 2만 달러를 돌파한 2010년에도 4110원 수준에 불과했다.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이 이어진 것은 오히려 정상궤도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절벽 끝까지 떠밀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최저임금만 가지고 논할 것이 아니라, 임대료와 각종 수수료 등을 조절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임대료와 각종 수수료를 조절하는 근본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015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최근 4년간 서울지역의 소규모 상가 평균임대료는 13.1%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자영업자 165명을 대상으로 자영업자로서 가장 힘든 경우가 무엇인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도 ‘임대료 인상’이 1위를 차지했다. 

카드수수료 부담도 만만치 않다. 특히 편의점의 경우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카드로 계산하게 되면, 가맹점주가 실제 얻는 이익은 단돈 204원에 불과하다. 담배 한 갑에 붙은 각종 세금을 제하고 카드 수수료에 가맹점 수수료까지 떼고 나면 점주에게는 4.5%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업체의 경우 가맹본부에 내야 하는 가맹수수료 부담까지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발품을 팔면 더 저렴한 가격에 재료를 구할 수 있음에도, 본사의 방침 때문에 시세보다 높은 값을 지불하고 재료를 구입하는 가맹점도 수두룩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자영업자의 경제적 부담은 인건비 상승에서만 오는 것은 아닌 셈이다. 이 같은 부담을 덜기 위해 어느 때보다 제도적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관련 법안들은 줄줄이 국회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 ‘허상’이 된 최저임금 1만 원 

지난해 4월, 심상정 당시 정의당 후보의 모습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지난해 봄. 각 당의 주자로 나선 5명의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임기 내 최저임금 1만 원 실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는 공약집을 통해 이 같은 공약을 세운 바 있다. 당시 홍 후보는 최고임금 준수율을 높이기 위해 최저임금 위반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중소기업과 자영업 등 영세업자들을 위한 세제 등의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도 마찬가지다. 안 후보는 매년 10%씩 인상해 임기 내 최저임금 1만 원 이상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후보 역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에 도달하겠다는 공약을 세운 바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후보는 연평균 15%의 인상률을 약속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에 도달하겠다는 공약이다. 이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내세웠던 공약과도 일치한다. 

당시 유 후보는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는 3년 동안은 영세업체 근로자의 4대 사회보험료를 국가가 지원하도록 하고,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업체에는 징벌적 배상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기상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최저임금 1만 원이 실현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최근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폭이 너무 가파르다며 연일 정부를 향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25일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

이에 최저임금과 관련한 논쟁은 정치권에서도 뜨겁게 달아오르는 모습이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에서도 최저임금 정책을 둘러싼 여야의 날선 대립이 이어졌다. 보수야당은 정부가 최저임금 재심의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여당은 을과 병의 다툼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완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저임금이 많이 늘어나 소득주도 성장이 성공하면 좋지만, 선순환뿐 아니라 악순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당장 자영업자가 문을 닫고 취약계층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최저임금 재심의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 역시 “정부는 최저임금이 고용축소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거부투쟁에 나서겠냐”며 “지금이라도 실패한 정책임을 인정하고 재심의를 통해 개선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모든 대선 후보들이 최저임금 1만 원과 함께 소상공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며 “공통공약 실행을 위해 정당들이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지원방안을 두고 논의하는 게 맞다”고 역설했다. 

 

■ 甲은 어디에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소득주도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가계의 소득을 올려 소비를 올리고, 이를 통해 기업 투자와 생산이 확대되고 이를 통해 다시 소득이 증가하는 선순환체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부의 방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이들은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소득주도성장이 이뤄질리 만무하다. 영세사업자들의 충격을 흡수해줄 수 있는 단단한 정책과 저소득층을 위한 촘촘한 사회안전망 등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을들의 전쟁은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최저임금 인상 논란에 임대료와 가맹수수료 등을 끼워 넣는 것은 본질 흐리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인건비 상승에 대한 책임을 대기업에 떠넘기는 것이라며 말이다. 하지만 영세사업자의 어려움이 비단 인건비 상승에서만 오는 것이라고 누군들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을까. 

힘없는 을들의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갑’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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